사회적가치지표(SVI)에 대한 아홉 가지 고민
이강익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사회적가치지표(SVI)란?
제가 오늘 이야기할 사회적가치지표(SVI, 이하 SVI)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2017년부터 내놓은 사회적경제기업의 사회적가치 측정 도구입니다. SVI는 ‘Social Value Index’의 약자로 “사회적경제기업이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조직운영을 통해 사회적 성과와 그 영향을 보다 종합적·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SVI는 총 14개의 사회적가치 측정 지표로 구성되어 있고, SVI 활용매뉴얼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홈페이지(발간자료)에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가치 측정에 오래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핵심적인 이유는 사회적기업 ‘재정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길현종, 2019). 사회적기업육성법 출범 이후 사회적기업 재정지원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적기업의 성과를 입증할 필요가 있었지만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실적 이외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회적가치 측정은 사회적기업의 종합적인 성과를 객관화된 지표로 보여주고 사회적가치 평가 등급에 따른 차별화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재정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좋은 수단으로 판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다음과 같은 부가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회적가치 측정 결과의 개별 기업 피드백을 통해 이 기업들의 사회적가치 창출을 제고하고, 둘째는, 사회적가치 측정 우수기업과 외부 공공·민간 기관과의 사업 연계를 지원하고, 셋째, 다양한 사회적경제분야의 지원 사업 및 기업 선정 시 사회적가치 측정도구로 직접 활용 또는 심사 참고 자료로 간접 활용되도록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 가치 측정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재정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SVI 14개 지표 중 3~4개를 적용하고 있고, SVI 측정을 희망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을 모집하여 14개 지표를 측정하고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우수 기업에게 어워드를 주는 방식으로 시범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중간지원조직에서도 SVI 측정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일부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등에서 SVI 지표를 각 기관의 다양한 사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 등록제가 실시될 경우 SVI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재정 지원 사업이나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 등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사회적가치지표(SVI)에 대한 현장의 문제제기
이상의 선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SVI와 관련하여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 제기는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SVI 측정 용역을 받아 수행한 기관의 실무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담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 상황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의 기업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지 않고, 기업 상황을 정확히 반영할 수도 없는 사회적 가치지표(SVI) 측정 사업이 기업에게는 그저 행정적인 짐만 주는 것 같았습니다. 만난 기업가분들이 하나같이 “다음에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여하는 기업이 받는 혜택에 비해 작성 및 증빙이 필요한 서류와 내용은 많고, 측정하는 지표는 현실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니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참여할 유인이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송무근, 이상봉, 2018, ‘좋은 일’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할까?)
제가 일하는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도 도내 130여 개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사회적가치 측정 희망 기업을 모집하여 측정을 했을 때 유사한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저는 다섯 가지 문제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SVI의 ‘정보 및 동기부여 문제’입니다.
일부 기업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이미 인·지정을 받았고, 사업보고서나 경영 공시에 참여하고 있는데 왜 사회적가치 측정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 제기에 대해 저희는 “이번 기회에 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 상황을 내적으로 점검하여 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 향후 재정지원사업, 공공기관 우선 구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과의 협력 사업에 도움이 될 터이니 미래 준비하자”라는 방식으로 기업을 설득하고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일부 사회적기업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일부 기업들은 충분한 공감을 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니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SVI 측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현장 기업이 참여를 하였지만 저는 SVI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못했고, 내적 동기부여도 부족했다는 점에서 많이 미안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SVI의 ‘실행 역량 문제’입니다.
상당수의 사회적경제기업은 사회적가치 측정과 관련한 내부 준비나 행정력이 취약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인증사회적기업은 나은 편이지만, 예비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업의 내부 행정력은 훨씬 더 취약합니다. 현장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SVI 측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고 큰 업무 부담입니다.
세 번째는 SVI 측정(지원) 기관의 ‘전문성 문제’입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나 권역별 중간지원 기관도 현장의 어려움을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여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SVI 매뉴얼이 나오고 있지만 현장 기업에게 SVI 측정지표의 의의를 잘 전달하여 내적 동기를 부여하고 사례를 통해 측정 방법을 잘 안내할 교육 자료가 매우 부족합니다. 현장의 측정을 지원하는 중간지원 기관 담당자들은 매뉴얼 숙지뿐만 아니라 현장의 여러 가지 상황을 잘 파악하여 사회적가치 측정을 도와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합니다.
네 번째는 SVI의 ‘실천적 적합성 문제’입니다.
현장 기업가들은 측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SVI 측정 지표가 기업의 다양한 상황과 사회적가치 창출 실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였습니다. 측정 매뉴얼에 나와 있는 세부적인 사회적가치 측정 지표가 너무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복리후생 및 교육·훈련, 금전적 방식의 사회환원사업에 집중되어 있어 기업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회적가치를 포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매출이 큰 기업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SVI의 ‘활용가능성 또는 지속가능성 문제’입니다.
현장 기업에서 SVI 측정에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이 측정 결과가 재정지원사업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되는지 잘 알 수 없고, 참여 기업에 주는 편익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기업의 SVI 측정에 대한 참여 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가치지표(SVI)에 대한 중간지원기관과 외부에서의 문제제기
현장에서의 문제제기와 더불어 중간지원기관과 외부 연구자들도 SVI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다. 앞의 문제제기와 연결하여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여섯 번째, SVI 측정의 ‘신뢰성’ 문제입니다.
SVI는 정량적 지표와 함께 기업의 상황과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비계량지표를 포함하고 있는데, 현장 조사자와 평가 위원의 역량 및 관점에 따라 측정 결과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양한 측정 사례를 쌓으면서 연구자들과 중간지원 기관의 측정 담당 실무자들의 체계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일곱 번째, SVI 측정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실천적 적합성 문제와 연계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SVI 지표를 바탕으로 SVI 측정을 하다 보면 고용 인원이 적고 매출이 적은 기업의 경우 사회적가치 창출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가치 측정 결과가 낮게 나옵니다. 지방 소멸 위기 지역과 같이 지역 기반이 취약한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우도 유사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상황을 반영하여 형평성을 고려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여덟 번째, SVI의 ‘이론적 정당성’ 문제입니다.
이미 SVI 이외에도 국내의 사회적경제기업의 사회적가치를 측정하는 다양한 측정도구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회투자재단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회계 및 감사’와 SK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사회성과인센티브(이하 SPC)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 회계 및 감사의 경우 사회적경제조직 내부의 자율성을 충분히 살려 조직과 관련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사회적 성과 목표를 잡고 측정을 하고, 국제 기준에 따라 측정 결과 및 집행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훌륭한 사회적가치 측정 도구입니다.
SPC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다보스포럼에서 제시한 사회적 자본시장(유가증권)의 창출이라는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이를 구현하기 방안으로 직접적으로 창출한 사회적가치(결과 중심)를 화폐로 환산하는 방법으로 측정을 하고 있고, 이를 명확한 인센티브와 연계시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위 측정도구와 비교하여 왜 SVI라는 새로운 측정도구를 제시하였고, 이 측정도구가 여타 측정도구와 비교하여 어떤 의미와 장점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이론적 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사회적가치 측정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각 측정도구가 가지는 목적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설득력 있게 이론적으로 제시해야만 그 측정도구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아홉 번째, SVI ‘제도 설계, 집행, 로드맵 문제’입니다.
아직 SVI 측정이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을 하는 단계이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시한 현장, 중간지원조직, 외부 연구자들의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개선할 수 있는 소통의 틀이 제대로 만들어져 지속적인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소통 및 행정집행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현재 SVI 측정을 재정지원사업에 반영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보다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직제 구조 속에 사회적가치 측정 전문가가 배치되어야 하고, 중간지원조직의 SVI 측정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외부 연구 용역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오며
오늘 제가 언급한 문제 제기는 고용노동부 및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들이 이미 고민하고 개선방안을 찾고 있으리라고 판단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SVI 측정의 현장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중간지원 기관 활동가로서 제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현재 사회적기업·협동조합 통합지원 기관 전국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SVI 전문가 양성 과정과 SVI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향후 현장 및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본지에 몇 차례의 기고를 하면서 앞에서 제기한 아홉 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VI 측정이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의 사회적가치를 측정하는 훌륭한 도구로서 제도적으로 잘 정착하여 우리 사회적경제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을 제고하고 나아가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이 성장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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