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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사회적경제 이야기/공감토크

【SEESAW】사람, 관계, 마음으로 쌓아 올리는 마을만들기 ①

by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2013. 8. 16.

 

 

사람, 관계, 마음으로 쌓아 올리는 마을만들기 ①

 

 

 

 


 

함께 하는 분들 :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 권상동

                 / 사회적기업 (주)이장 대표 신진섭 

때와 곳 : 2013년 8월 13일 / 강릉 문화공간 커뮤니티 카페 '품' 

 

 

강원도 사회적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공감토크>


이번 공감토크는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농촌마을 컨설팅을 하면서 오래 전,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권상동 센터장과

사회적기업 ㈜이장의 신진섭 대표가 함께 해주셨습니다.

공동체 회복과 주민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뜻을 같이 하고 있는 두 분이기에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밤을 야 한다. 서로에 대한 공감지수가 거의 100%로

거의 이의 제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없는 토크가 될지도 모른다.” 걱정하시며,

신진섭 대표님께서 특별히 사회자 역할을 자처해 주셨는데요.

걱정과 달리 두 분께서 함께 해 오신 시간만큼 재미나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이번 공감토크는 총 세 편으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그럼 사회자 신진섭, 특별 손님 권상동과 함께 하는 8월의 공감토크,

사람, 관계, 마음으로 쌓아 올리는 마을만들기”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권상동 센터장(좌)과 사회적기업 (주)이장 신진섭 대표(우)

 

 

 

 

돈보다는 마음으로, 농촌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한 첫걸음…

 

신진섭) 제가 농촌마을 컨설팅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강원도 새농어촌건설운동이 막 시작되던 때, 2000년쯤 ㈜이장의 전 대표인 임경수 박사(이하 임 박사)가 자원봉사처럼 농촌 마을의 자문과 컨설팅을 해주고 다니던 팀을 하나 꾸렸는데 거기에 일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인 것 같네요.

        그리고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던 첫 번째 생각은, 농촌 지역에 전문가들이 없다 보니까 전문성이 필요한 일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농촌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런 일들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해보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사업으로 만들어 해보자는 제안을 임 박사에게 했고, 임 박사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주식회사 이장이라는 회사를 차리게 되었죠. 농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전문가 집단이 없던 상황에서 회사를 만들어 새로운 접근을 시작하다 보니 농촌 지역에 특화된 건축, 디자인, 관광 등 필요한 팀들이 많았고, 그렇게 한 팀 한 팀 만들다 보니까 나중에 7,8개 정도의 팀이 있었어요.

        그렇게 10년을 오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장 10년 차에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제가 대표를 맡아 3년차가 되고 있는데요, 지금은 이장이 조금 더 지역 내에서 자체 네트워크를 만들고 키우는 데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적경제 쪽에 많이 관심을 두고 있고, 사회적경제의 주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묶어낼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주체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일들을 발굴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일정 정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 협동조합 등 여러 관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까 정말 잘 하고 있는 건지, 잘할 수 있는 건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항상 그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게 현재 저의 모습인 것 같아요.

 

 

 

                                                                                                             ▲ 사회적기업 (주)이장 신진섭 대표

 

 

 

권상동) 10여 년의 역사를 짧은 그림처럼 말씀해 주셨네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96년에 강릉에서 인터넷 기반의 업무용 프로그램과 인터넷 방송 지원 서버를 개발하는 회사를 열었어요. 97년에 강릉시청이 첫 번째 고객이 됐죠. 일 년 동안 시청을 설득해서 시청 인터넷 네트워크 설계를 하고, 동사무소들을 인터넷으로 묶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그 때 당시 행정자치부에서 정보화마을이라는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정보통신이라는 것이 전산지원부서 같은 형태로만 존재했고, 사실은 정보라는 개념에서 접근했던 것도 아니라서 ‘지역의 정보화’는 특히 더 어렵고 생소한 것이었죠. 그래서 그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관련 부서의 요청이 왔어요. 그 일을 도와주면서 ‘농촌마을에 이런 움직임이 있구나.’ 감을 잡게 되었죠.

        그러다가 98년도에 강원도 새농어촌건설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어느 마을에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의견을 좀 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그 당시에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던 데가 강릉시청, 원주대학교, 우리 회사 이런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마을에서 홈페이지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앞서 있었던 거죠. 그런데 홈페이지를 본 적도 없는 그분들은 뭘 준비를 해야 할지,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에 대한 계획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마을의 전체 소개 자료를 쓰는 일부터 마을의 대표적인 브랜드 개발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그 마을에서 한 일이 다른 마을에 소문이 나면서 농촌마을의 온라인쇼핑몰을 개발하는 일, 녹색농촌체험마을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죠. 마을의 이름을 짓는 것, 마을에서 대표적인 자원이 뭔지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을 우리가 다 해줬던 거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걸 컨설팅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마을 사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한 의지로 밥 한 끼 얻어먹고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감자 한 박스 받아가지고 오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었죠. 돈은 다른 데서 벌었으니깐 마을에서 하는 일을 돈과 연결을 시켰던 것이 아니라….

 

 

                               ▲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그렇게 3년 정도가 지나고 처음에 함께 일했던 마을들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어떤 마을은 리더 그룹들 중에 서너 명이 짐을 싸서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마을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싸우기도 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그동안 고생해서 일한 리더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는 오해가 생겨서 고소, 고발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봤던 곳들은 대체로 리더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더 많은 상황인데도 회계처리를 잘 못해서 내지는 적극적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그런 일들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게 제 의도와 무관하게 제가 한 일이 마을을 심하게 망가뜨리는 계기가 된 것들을 보게 된 거죠.

        그 무렵에 이장이 춘천에 사무실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어, 이장이란 곳을 알고는 있었어요. 마침 주문진 수협에서 이장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기에 설명회 때 구경을 갔죠. 그곳에서 이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깐 우리랑 고민도 비슷하고,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업자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았어요.(웃음) 우리가 선한 의지로 했던 것이 마을에 안 좋은 영향으로 가고 있단 느낌을 받고 있는 무렵이니깐. ‘이장이 말하는 대로 저렇게 일을 해서 돈이 될까? 우리들처럼 마을을 망가뜨리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러면서 태풍 매미로 수해를 입은 마을을 도와 마을전통숲복원사업, 면 단위 마을을 대상으로 한 마을교육사업 등을 하면서 행정과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주변에 좋게 소문이 나게 되었죠. 그 후에 행정안전부의 참살기좋은마을만들기사업이 우리 지역에서 계획되면서 시에서 자문조직을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아주 고맙게도 저희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줬어요. 그렇게 마을만들기 일들을 지원센터에서 실험 운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함께 해 준 사람들…

 

신진섭) 권 센터장이 마을사업을 하면서 “서류를 써 주는 일은 하지 말자.”라는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컨설팅 일을 시작할 때는 주민들이 참여해서 같이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우리가 보고서로 잘 정리된 내용을 주면 그것을 토대로 마을에서 스스로 잘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보니까 보고서나 정리된 말은 크게 의미가 없고 마을에서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현실적으로 풀어 주는 게 더 좋은 컨설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 쓰는 일보다는 자문컨설팅, 만남, 코칭 같은 스타일로 꽤 오랫동안 일을 해 왔는데 사실 이 방법은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좋지 않죠. 그런데 권 센터장은 이런 방법으로 10여 년을 살아오고 있는 거라 금전적으로 생활이 어려웠을 텐데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해요.

 

 

 

                                                                           ▲ 생태마을에서 주민설명회를 하고 있는 신진섭 대표의 모습

 

 

 

권상동) 사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세 번 정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외롭기도 하고, 돈을 벌려면 업자로 나서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제일 싫어했던 그 모습의 나여야 하는 거고…. 제가 어떤 마을에서는 박사님으로, 어떤 마을에는 주사, 어떤 마을에서는 대표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그만큼 역할이 다양화되어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2007년, 진안에서 열렸던 마을만들기 전국대회에 우연찮게 참여하게 되었는데 첫날 개막식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지역에서 혼자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외로웠는데 8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미친 놈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계속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진안이 마을 관련 사업으로 유명하다는 말과 진안에서 마을 일을 하고 있는 구자인 박사(이하 구 박사) 이야기를 듣고는 전국대회가 끝나자마자 구 박사를 만나러 갔어요. 구 박사와 식사를 하면서 그 동안 강릉에서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니까 구 박사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전북 마을 스무 곳을 추천해 줬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추천해 준 곳마다 전화를 해서 저를 연결시켜 줬어요. 처음 본 사람을 위해 이렇게 애써 주시는 구 박사님에게 감사해서 어떻게 하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겠냐고 여쭈었더니 구 박사는, 아마 기억 못 할 텐데 “나한테서 받았던 느낌 그대로를 지역의 후배들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포기하고 싶었던 고비를 넘긴 것 같아요.

 

 

신진섭) 권 센터장이 외로웠다고 이야기했듯이, 조직 없이 계속 독립적으로 일을 해 왔잖아요. 조직이라는 것도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거지, 시작은 보장된 수입도 없이 이 일을 해 왔었던 거니까. 세 번의 위기라는 것도 그런 맥락 속에서 나왔을 테고요. 결혼도 최근에 했을 정도로 일에 빠져서 살았는데 이 일이 무슨 매력이 있었던 걸까요? 저는 회사라는 틀을 갖고 있고 직원들과의 관계를 가지면서 13년 동안 조직 안에서 일했는데 권 센터장의 경우 정반대여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궁금하네요.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권상동 센터장

 

 

 

권상동)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일이 진행되는 순간순간은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해 왔고,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다른 업체와 함께 하기도 했고, 그리고 뒷받침이 되어 주던 강릉 경실련도 있었고요.

        2002년 무렵에는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한 2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 했던 때가 있었어요. 운영하던 회사도 후배들에게 넘기고, 자문 정도만 해 주는 상황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리랜서가 된 거죠. 그 전까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매주 주말에 산을 갔었거든요. 그런데 사고가 나니깐 산에도 못 가게 되고, 극복 방안으로 숲해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게 머릿속에 들어오니깐 농촌체험마을, 그린투어리즘 이런 것에 대한 고민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었고 일본, 독일의 생태교육 이론에 대한 자료를 보다 보니 이걸 어딘가에 적용시켜 봤음 좋겠단 욕심들이 생겨났죠. 그래서 그것들을 마을에 가서 쏟아 부었어요.

        그런데 사실 지금 와서 보니 제가 마을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멋져 보이고 마을사업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깐 “일본은 이렇게 되어 있으니 우리도 이렇게 해 봅시다.” 라는 떼를 쓴 것 같아요. 마을 어른들 입장에서는 젊은 놈이 와서 떼쓴다 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마을에 가서 “어디어디에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된 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 한 편의 인터뷰쇼를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공감토크 세 편으로 연재되는데요.

다음 편을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짧게 소개해 드리자면,


두 번째 편에서는 ‘경험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 만들기와

마을만들기의 진정한 의의’에 대한 이야기가,

세 번째 편에서 ‘현재 사회적경제 주체들에 대한 생각

중간지원조직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니까요.

두 번째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마을만들기지원센터란, 주민이 앞장서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하는 센터로

지역 내 마을리더, 활동가, 전문가가 함께 하는 활동공간이자,

마을만들기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홍보 공간입니다.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는 지역네트워크 형성뿐만 아니라, 

마을만들기 정보 수집·제공, 상시적인 주민 교육을 통해

주민 의식을 전환하고 리더그룹을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033-655-1124

-홈페이지 http://www.maeul.or.kr/

 

 

<사회적기업 (주)이장>

       주식회사 이장은 지역과 농촌마을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사람과 자연을 고려하는 생태적 관점에서

생태마을 조성 및 지역활성화 컨설팅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입니다.

공동체성 회복과 주민참여의 과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기업이념을 공유하기 위한 콘텐츠 개발과 교육 사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033-256-0763

       -홈페이지 http://www.e-ja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