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글로벌 시장경제에서 빈부 격차의 극단적인 확대가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체제 위기의 극복을 위한 대안의 하나로, 개인의 이익이나 조직의 이윤보다 공동체의 통합과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주력하는 사회적 경제의 역할과 기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 각국에서도 최근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장과 정부의 힘만으로 사회 통합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이 부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경제의 육성 필요성은 진보 진영에서 제기한 정책 의제였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사회 위기로 심화되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에서도 사회 통합과 고용 창출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사회적 경제의 육성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그 유력한 주체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것에 대해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드물게 공유하는 정책 의제가 된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인식 격차가 매우 큰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큰 갈등 없이 새로운 정책 의제를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시도이다.
사회적기업의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는 정부가 사회적기업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정책은 `마을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을 육성하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지방정부가 훨씬 적극적이다. 여당과 야당은 물론 중앙과 지방에 걸친 전면적 지원이 사회적기업 육성 노력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비 사회적기업과 정부 인증 사회적기업 수는 2007년 441개에서 2013년에는 2,637개로 불과 5년 사이에 무려 1,672%에 달하는 천문학적 속도로 증가하였다. 2012년에는 사회적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불과 1년 여 만에 전국적으로 수천 개에 달하는 사회적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기업 현상은 사회 주체들의 역량이 자연스럽게 숙성되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장려되고, 인가되고, 지원되고, 심지어 만들어지는 `정부 주도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정책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사회적기업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지만, 역으로 정부에 의해 그 길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들은 이 위험 요인을 미리 인식하고, 정부로부터의 자립을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사회적기업들이 지금처럼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이 심화될 때 사회적기업은 도리어 사회적 경제의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기업이 자생력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그 부담이 정부로 향하게 될 것이고, 정책 갈등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와 기업의 역량 육성에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까지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 측면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특히 지방정부의 적극적 지원은 취약한 지역의 사회적 역량을 육성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의 활동 무대가 지역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적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긴밀한 상호 협력과 파트너십 관계는 사회적기업의 건전한 토대의 필수 조건이며,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기업의 육성을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어떠한 목표와 방법으로 사회적기업들을 제대로 육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정부와 사회적기업은 그간의 양적 성장 방식을 거두고 질적 내실을 기하고, 자생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육성의 목표와 방식을 전환해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사회적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시장과 시민사회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함으로써 사회 속에 견고하게 자신들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의 혁신과 질적 전환을 위한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적기업들은 이제 정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의 인적 자원을 육성하고, 창의적 혁신 노력을 전개하며, 경영 프로세스의 개선을 통해 기업의 뿌리를 내실화하고, 사회 속에 그 뿌리를 공고하게 다지는 노력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앞으로 이러한 노력들을 지원하는 데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
<강원일보·한국분권아카데미 공동칼럼>
** 본 칼럼은 2013년 11월 20일 강원일보에 기고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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