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람과 채움
이진천
(춘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 / 춘천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꾸벅.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3월 5일 춘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 신임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춘천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이진천입니다.
영동 지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는데, 여기 춘천 지역은 다들 이런 겨울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명색이 강원도의 겨울인데 먼 산봉우리조차 눈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생협은 유통을 하는지라, 폭설 소식을 들으면 영동 사람들은 물류가 돌아가지 않는데 어떻게 사업을 하나, 진심으로 걱정하고는 합니다. 눈이 조금만 와도 두세 배 힘이 드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속으로는 눈이 오지 않는 춘천의 겨울을 즐겼습니다. 농사철을 앞두고 너무 가물다는 것도 알고, 눈에 지친 영동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장의 하루 일상은 편하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남고 모자람에 대한 생각을 하던 즈음, 원주 무위당 선생님 덕분에 좋아하게 되었던 노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의역하자면 이렇습니다.
“남고 넘치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고 부족한 데 보태는 것이 천지의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대체가 거꾸로다. 모자라고 부족한 데에서 덜어내고 뜯어내서, 이미 남고 넘치는 데에다 되레 갖다 바치고 있지 않은가!”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이를 테면 넘치도록 용감하지만 주위를 살핌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고 치면, 용감함은 줄이고 살핌에 채워서 자연스러운 균형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 하건만, 용감함이 나의 경쟁력이라 믿고 살피는 일은 미루고 더욱 치달으려고만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살피고 경계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물론 이 말은 동시에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사회적경제 영역은 대체로 모자라고 부족한 축에 속합니다. 사업 주체들을 보면 이는 대체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뭐 별로 가진 것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저부터가 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보태지기를 바라는 것의 당위성이 저절로 충족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업의 영역이나 방식이나 풍토나 마음가짐은 과연 어떠한지, 잘 돌아볼 문제입니다.
특히, 연대하고 네트워킹하고 연합하는 문제는, 이 남고 모자람에 관해서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온전히 드러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스스로 남음이 있으면 모자란 데 보태주는 협동적 관계를 형성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디자이너의 생태계 조성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협동하는 생태계를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며, 행여나 모자란 데에서 박박 긁어내는 어리석은 짓들을 하지 않는 학습의 장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춘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생각하면, 복잡다양한 강원도의 사회적경제 영역들의 협동을 생각하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협동의 기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충분히 기운찬 느낌은 없습니다. 물론 각자 사업장에서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모자람 혹은 남음이 협동적으로 채워지고 덜어질 때, 그럴 때 비로소 부끄럽지 않게 사회적경제라고 이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반성을 해 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작고 약한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서로 기대며 살아왔고, 그것이 하늘의 이치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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