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性)문화 만들기, “우리가 있어요!” ②
○ 함께 하는 분 : 김명섭 세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김옥경 ㈜너나들이성문화센터 대표
전세원 주식회사 올두성교육연구소 대표
강원도 사회적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공감토크>
2020년, 여성가족부가 아동 성교육 교재로 1971년 출간된 덴마크 서적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채택했다가 선정성 논란이 불거져 전량 회수한 일이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페르 홀름 크누센 작가는 “처음 책이 출간됐던 50년 전 덴마크에서도 보수 세력의 비판을 받았지만, 되레 그해 정부의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성교육도 시대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라며 사회적 논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진심 어린 제언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논란을 계기로 ‘눈높이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학부모와 교육계를 중심으로 단계별,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공교육 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조차 청소년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단계별, 대상별 성교육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가지만, 스스로 해법을 찾아 교육과 캠페인 등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강원도 (예비)사회적기업이 있습니다. 성 평등과 젠더 이슈가 어느 때보다 민감한 요즘, 성에 관한 편견을 걷어내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뚜벅뚜벅 제가 가야 할 길을 알아 누구보다 앞서 걸어나가고 있는 기업 세 곳을 만나봅니다.
그럼, <건강한 성(性)문화 만들기, “우리가 있어요!”>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 해당 기사는 코로나19 안전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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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김명섭)
세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세이)은 강사 양성 교육 종료 후에도 계속 반복해서 기본 교육을 하고 있고, 저 스스로도 끊임없이 성 감수성을 점검하고 있어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남성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리 잡은 편견이 꽤 있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계속 끊임없이 생각의 틀과 편견을 깨고 있어요. 성교육, 폭력 예방 교육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요. 드물지만 교육 후 소송에 걸리는 경우도 봤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해요.
김옥경)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가해자’보다는 ‘행위자’란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고, 성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이 많죠. 성교육 자체도 이런 경계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교육 그거 다 소용없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결국 교육의 부재와 불친절성 때문이에요. 일상에서 ‘몰라서’ 발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때문에 ㈜너나들이성문화센터(이하 너나들이)도 그렇고 같은 영역의 분들이 교육의 효과도 의미도 건질 수 없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계속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그런 교육이 너무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라에서 내려온 성교육 지침서가 있어요. 해당 지침서를 근간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 게 현행 관련 조항인데, ‘성폭력 상황을 예방하려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려면 데이트에 친구와 함께 한다’ 이런 식으로 시대와 동떨어져 있어요. 이런 부분의 개선이 시급해요.
김명섭)
성교육과 폭력 예방교육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봐요. 성교육 시 내 몸이 소중한 것처럼 타인의 몸도 소중하기 때문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서로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하고 타인에 대한 영역들은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요. 이게 좀 더 확대되면 이제 폭력 예방 교육과 맞닿게 되는 거죠. 폭력이라는 게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힘을 더 가진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무너뜨리면서 발생하는 것인데,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평등하게 바라본다면 폭력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지거든요. 세이의 슬로건인 ‘성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말하다’는 나를 소중히 하는 성교육으로부터 평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에요.
전세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제가 행동치료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성교육을 하다 보면 행동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요즘 많이 듣는 질문이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교육하나요?’란 질문이에요. 일대 일로 그림을 갖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요. 놀이식 접근이죠. 커뮤니케이션은 꼭 말이 아니어도 돼요.
그래서 개발한 게 발달장애인 성교육 카드 ‘찾았성!’이에요. 발달장애 아동이 사춘기를 맞이하기 전 미리 알려줄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한 결과물이에요. 부모가 아이들한테 성교육을 하자 하면 무언가 매개체나 도구가 있어야 해요. 올두성교육연구소(이하 올두)가 만든 찾았성!은 생식기, 생리컵, 콘돔 등 명확한 그림카드로 이뤄져 있어요. 성을 터부시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겨드랑이에 털이 나고 여성의 가슴이 커지고 하는 그림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걸 더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여요. 그림 맞추기 게임하듯이 접하면서 게임 카드의 요소들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물건인지 재밌고 자연스럽게 습득해요. 카드를 한 장씩 돌리고 본인 카드를 설명하게 하거나 강사가 대신 설명해 주면서 쭉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보다 설명도 훨씬 잘하고 재밌어해요.
찾았성! 카드게임을 접한 분들한테 교육 내용을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들어요. 여러 여건이 부족해 아직은 어렵다고 고사하고 있지만 대신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전국 최초 장애·비장애 통합 아동·청소년성문화센터)의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 작업의 집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문을 열고 톡톡톡>이란 제목인데, 강원권에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예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하고 있고요.
4. 최근에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김명섭)
창립 멤버들의 공통된 고민이 강원도에 속초 말고 ‘성폭력피해상담소’를 한 곳 더 운영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상담소를 3년 이상 운영하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방식을 채택했는데, 여러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돼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물론 비슷한 일을 하는 조직이 많이 있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통합사례관리가 되지 못한다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요. 비밀 보호 유지 차원도 있고, 각각의 영역이 있다 보니 사건 자체가 절대 공개되지 않기도 하고요.
김옥경)
시스템적으로 하나로 연결이 안 되죠. 문제는 사건 자체는 각 기관의 영역에 연계돼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가정폭력 사건이지만 성폭력이 포함된 경우 관계 기관의 연계가 필요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죠.
김명섭)
어느 정도는 경계를 정비할 시기를 맞았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여성가족부 폐지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기도 하고요.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얼마만큼 인정받아야 하는 일인지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충분히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반성의 여지가 있고요.
전세원)
발달장애 당사자 부모로서 느끼는 사회적 사각지대를 체감하는 일이 최근에 있었어요. 엄마가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투신한 사건인데, 해당 사건 한 달 전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삭발을 감행하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촉구했음에도 안타까운 선택을 목도하게 된 거죠. 복지나 모든 영역에서 발달장애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사회적 보호망 없이 오롯이 각 가정의 문제로 풀어야 하고 또 그렇게 치부되는 현실이 서글퍼요. 상담 시설에 상담을 요청해도 거부되거나 전문 영역이다 보니 ‘자신이 없다’며 거절당한 경험도 있어요.
올두를 발달장애 전문 연구소로 키우고 싶다는 비전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전문기관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전문성 있는 기관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혹자는 올두의 사업 분야를 틈새시장이라고도 하는데, 너무 어려운 틈새시장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교육 연구소를 운영하냐고 하면,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걸 안 순간부터 친절했던 세상이 더 이상 친절하지 않아요. 문제 행동이 발생하니까 집에만 있게 되는데, 어떤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물어보거나 상담할 수 있는 전문기관은 부재해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스스로가 당사자 부모니까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일 수 있게 나 같은 사람 하나는 이런 데 미쳐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올해 초에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조금씩 내 비전과 소신이 맞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버티고 있어요.
5. 기업 또는 스스로 그리고 있는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옥경)
편하게 성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너나들이의 목표는 성(性)과 성교육에 대한 인식개선을 목표로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 다양한 사례로 이야기 해보고, 공감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예전에 너나들이가 ‘완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어요. 어려움을 겪거나 고민을 나누는 상담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며 큰 호응을 해주었는데, ‘책’이 평소에 잘 이뤄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곳곳에 뿌려두면 책 한 권만 있어도 동아리든 소모임이든, 또 가족이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2~3년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전세원)
저는 치료를 위한 발달장애인의 삶을 지양해요. 대신 아이들이 지역사회 공동체, 그러니까 커뮤니티에 속한 삶을 살길 바라요. 발달장애 부모들이 정말정말 바라는 모습이죠. 발달장애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속한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의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의 힘이 장애 아이도 부모도, 기관 종사자와 모든 사람들을 변화로 이끌길, 그래서 세상 장애인과 사람들이 뭐든 할 수 있는 올두(All Do!)의 세상이 오길 꿈꿔요.
김명섭)
세이는 앞서서 말씀드린 발달 단계별 성교육 매뉴얼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매뉴얼 작업은 발달단계별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활동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활동지와 교구재까지 다 망라하고 있어요. 초등, 중등, 고등 그리고 성인까지 정성을 들여 정리하고 수많은 토론을 거치는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장에 배포하면 상시적으로 성교육이 이뤄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잘 완성해서 현장에 보급도 활성화하고, 지금의 세이에게는 매뉴얼 작업이 꼭 성과를 이루고픈 숙원 과제예요.
-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터부시되는 성(性),
세 곳 기업 모두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죠.
각각의 영역에서
제 역할과 쓰임을 고민하는
예비사회적기업 3팀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며
다음 공감토크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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