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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의 굴레, 누룽지로 벗다

정선 깜밥이날다

 

1980년대 정선군 사북읍은 지나가는 개도 입에 돈을 물고 지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만큼 석탄 산업으로 크게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석탄 산업의 몰락과 함께 급속한 쇠퇴를 겪은 격동의 공간입니다.


정부는 폐광지역 경제회생을 위해 폐광특별법을 제정하고 19986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인 강원랜드를 설립하며 정선지역에 또 한 번의 파란을 예고했습니다.


카지노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가려진 어둠에는 도박중독의 끊을 수 없는 굴레와 각종 폐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도박의 마수에 걸려든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요?


정선에서 충만한교회목사이면서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지정 사회적기업인증을 받은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김석기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김석기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 대표

 


어쩌면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선으로 향하는 산세 좋은 풍광을 즐기던 유쾌한 기분은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을 바로 마주한 후 다시 보자니 깊은 시름에 잠긴 듯 고요해 보입니다. 어쩌면 내 이웃, 내 가족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도박중독과 그 덫에서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고자 이 악물고 전진하는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세요.

 


왜 도박중독자에게 일을 제공할까요?

 

김석기 대표는 강원랜드 설립 초기부터 도박중독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현재까지도 지역에서 도박중독 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는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모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회 바로 옆에서 벌어진 도박중독 장기체류자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도박중독자 문제를 직시한 김석기 대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행복한 밥상이라는 이름으로 도박중독 장기체류자 대상 무료급식을 진행했습니다


도박중독 장기체류자는 당장 컵라면 하나 사 먹을 수 없는 굶주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밥을 먹고 다시 카지노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무료급식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행복한밥상' 무료급식소와 상담소로 운영된 공간

 


대신 중요한 배움은 있었습니다. 3년 동안 매일 만나게 된 도박중독 장기체류자에게 식사와 함께 제공한 소통과 상담의 과정으로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도박을 끊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것을요.

 

김석기 대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박중독자를 위한 치유와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설립을 꿈꾸게 됩니다.

 

“‘누룽지를 만들어서 자립기반을 제공하는 자활협동조합을 구상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들을 강원랜드 출입을 스스로 영구제한하며 사회복귀에 대한 의지가 확실한 분들로 정했어요. 카지노 영구출입정지는 본인이 신청할 수 있고 번복할 수 없죠


최근 한 언론이 도박중독으로 정선지역에 장기체류하는 분들을 도숙자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이런 도숙자분에게 돈을 쥐어주면 다시 도박을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그러니 스스로의 의지가 강하면서 도박장으로 발걸음하지 않을 영구출입정지 신청을 한 분들과 함께 출자해 창업하게 된 거죠.

 

대신 도박중독 장기체류자를 위해서는 그린케어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녹색치유농장을 운영하는 농사짓기 프로그램으로 배추, 옥수수, ,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합니다. 수확한 농산물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이 배분하는데 참가자들은 반은 자신이 갖고 반은 가족이나 이웃 등 보내고 싶은 곳에 보내게 됩니다.

 

누룽지를 만들며 하루 3번 참회의 기도를 잊지 않는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 참여자 분들과 마찬가지로 땀의 가치를 알리려 하는 활동이죠. 지난해 시행 후 큰 호응 속에 올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누룽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깜밥이날다누룽지자활협동조합의 생산품은 깜밥이날다라는 이름으로 판매됩니다. 깜밥이날다 이름은 누룽지를 이르는 강원도와 전라도, 충청도 지역 방언에서 따온 깜밥과 도박중독자들이 희망의 날개를 달고 다시 사회로 건강히 복귀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날아오르다의 순우리말 나르샤를 합쳐 만들어졌습니다.

 

앞서 누룽지 사업을 펼치고 있던 논산지역자활센터의 기술지원과 강원도박중독치유센터’, ‘강원도산업경제진흥원’, ‘정선군청등의 도움으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안착한 깜밥이날다의 고소한 누룽지는 사북읍 옆 고한읍 소재 공장에서 영구출입정지를 신청한 3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의 직원이 바지런히 만들어냅니다.

 


 


초여름 때 이른 무더위를 보였던 지난 621일 방문한 깜밥이날다 생산 공장은 고소한 내음과 함께 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하루에만 50인분 밥솥에 6~7번 밥을 짓는다고 합니다. 대략 300인분 가량의 밥이 누룽지로 재탄생하는 셈이죠. 오늘은 곤드레누룽지를 만드는 날이라 나물의 향긋함이 기분 좋은 곤드레밥이 한 솥 가득입니다.

 

곤드레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곤드레밥을 밥솥에서 한껏 덜어낸 후 누룽지 찜기로 가져가 적당량씩 틀에 덜어냅니다. 시범사업부터 해 벌써 3~4년차에 접어든 노련한 일꾼들은 기계로 찍어낸 듯 정량의 밥을 정확하게 내려놓습니다


‘HACCP’ 인증을 위해 공장 이전을 준비하는 깜밥이날다는 이 같은 공정에 쏟는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정량의 밥을 덜어내 컨베이어벨트 형식으로 옮겨지는 기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생산공정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찜기의 윗부분을 아랫부분과 맞닿게 해 꾹 눌러야 하는데요. 찜기 자체의 열기가 상당하고 누르는 압에 따라 누룽지의 맛이 결정되는 섬세한 공정 탓에 초보자에게는 무리라는 의견에 따라 열심히 눈으로만 익혀보았습니다. 실제로 연차가 꽤 되는 베테랑 분들만 기계를 만진다고 하시네요.

 

말 그대로 찜기의 열기 속 구슬땀을 흘리며 완성된 누룽지는 일반미’, ‘현미’, ‘보리쌀’, ‘강황’, ‘곤드레5종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고 현미와 잣을 함께 첨가한 제품도 개발해 시판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고소하고 바삭한 누룽지는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물과 함께 끓여내면 든든하고 부드러운 한 끼 식사로 훌륭한 숭늉이 됩니다.

 




 

한 번에 3~4개의 찜기를 돌리며 날래게 손을 움직이는 어르신은 70대라고 하십니다.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카지노 영구출입정지 신청을 한 후 깜밥이날다에서 일하고 계신 분으로 종일 서서 일하는 게 조금 벅차긴 하지만 일도 손에 익고 보람도 크다고 호호 웃으십니다.

 



 


날아라 깜밥아, 함께 살자

 


깜밥이날다는 도박중독자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돕는다는 사회적가치 실현 외에 20164,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후 전국 협동조합 우수상품 선정 강원도 사회적기업 우수상품 선정 전국 우수중소기업 선정 현대백화점 전국 사회적기업 1000개 입찰 경쟁 패셔니스타 합격에 이어 20177월에는 사회적기업 박람회 우수상품 선정으로 청와대에도 소개될 만큼 상품면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밥이날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오해와 의심을 담은 눈초리를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기업 운영이라는 점은 일터신학의 내재화로 가뿐히 극복해 낸 김석기 대표지만 지역 주민들의 냉소적인 반응에는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모임2016년 정선 화상경마장 유치를 무산시킨 점을 큰 성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도박도시라는 오명은 물론이고 서민들의 값싼 투기의 반복으로 한 가정경제를 몰락시킬 수 있는 중독성 강한 화상경마의 위험성을 크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당시 지역민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 ‘지역경제 활성화에 왜 반대하느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강원랜드 설립 후 정선군의 자살률은 전국 평균보다 1.8배나 늘었고 범죄 발생건수도 도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달아 강력 범죄가 3배 이상 증가하게 됐어요. 또 교회 성도들의 35% 이상이 강원랜드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도숙자 생활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요.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모임은 정선의 도박중독 자살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정선경찰서에 도박관련 자살자와 변사자 수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는데 결과를 보고 크게 놀랐어요


한 해에 9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박과 관련해 자살자로 발견된다는 충격적인 통계였죠. 한 명의 자살은 가까운 6명의 사람에게 연쇄 반응을 일으켜요. 그러니 나와는 무관하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알게 모르게 지역 내 자살사건에 영향을 받게 되고 지역 자체가 조금씩 좀먹어가게 되는 거죠.

 

카지노로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는 강원랜드 측도, 또 해마다 막대한 세수를 올리는 정부도 어느 정도는 도박중독자에 대한 사회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도박중독자들의 자립과 자활은 지역의 건강한 삶을 되살리고 유대를 높이는 시대적인 소명이자 저 스스로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김석기 대표와 도우미 일꾼

 


깜밥이날다는 올해 전국유통망을 갖춘 대형유통사와의 독점계약을 앞두고 있고, 미 식품의약품(FDA) 승인으로 수출의 길도 틔우며 해외로까지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갖은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사람을 살리기위해 달려온 깜밥이날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점입니다.

 

 

검은 황금을 캐던 사북읍은 일확천금의 욕망이 들끓는 자본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그 빛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가려진 어둠에도 사회의 진정성 있는 이해와 현실성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테지요도박중독을 그저 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좁은 시야의 우리 사회를 대신해 도박중독자의 손을 잡고 조금 앞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깜밥의날다가 걷는 길에 가시덤불 하나 걷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Posted by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